9년 만의 뉴욕 여행 단상

20대 때 다녀온 뉴욕과 30대가 되어 다녀온 뉴욕은 꽤 달랐다. 그때는 학생이었고 지금은 서울에서 일하는 사람이 된 지 오래라서 그럴까? 아니면 서울과 서울에서의 삶이 달라져서인지도 모르겠다.

9년 만의 뉴욕 여행 단상
Jane St. 근처, 좋아하는 골목에서 찍은 사진. 날씨가 무척 좋았다.

9년 전에 뉴욕에서 나는 성인이 되고 처음으로 숨통이 트이는 기분을 느꼈다. 너무 다양하고 개인화 되어 있고 무관심 속에서도 한 명의 존재로 온전히 패싱되는 게 처음 느끼는 감각이라 좋았다. 무척 편했다. 각자이면서 포함되어 있는 느낌이랄까? 설명이 어렵다. 당시 내게 서울은 버겁고 지치는 곳이었고 유럽의 주요 도시들은 원하지 않는 종류의 이방인됨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뉴욕에서만 유일하게 이런 기분을 느꼈다. 그래서 각별했다. 내가 편하게 있을 수 있는 도시를 드디어 만났구나! 했던 기억이 강렬하다.

그래서 늘 다시 가고 싶었고, 너무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 다시 갈 수 있게 됐다. 이번에는 어떤 것을 느낄까 궁금했다. 이번에도 그런 편함을 느끼긴 했지만, 아마.. 서울에서도 이제 편해졌나보다. 좀 더 아는 느낌이었다. 대신 어릴 땐 그저 나를 중심으로 새롭고 다채로운 풍경, 배경이었던 얼굴들이 현실적으로 다가왔다. 부엌을 채운 이민자의 노동과 이른 새벽부터 밤까지 도시를 떠받치는 사람들의 모습, 코로나 때문인지 좀 더 팍팍해진 듯한 분위기도 느꼈다. 그곳에 살고 있는 친구들도 비슷하게 느끼는 게 신기했다. 하지만 여전한 뉴욕의 특장점은 정말 걷기 좋고, 여기저기 공원이 있다는 것이다. 식사 경험도 좋았다. 살면서 먹은 것 중에 손꼽게 기억에 남게 맛있는 것들이 있었고, 대체로 식재료가 좋다고 느꼈다. 또, 과일이 서울보다 싸고 맛있었다.


이제 워낙 서울에 모든 게 다 있어서 그런지 옷을 좋아하는 남편을 따라다니며 본 옷가게나 왠만한 샵들의 90% 정도는 그저 그랬다. 빈티지는 거품이 심한데다 오프라인이라 가격 경쟁력이 좋지 않았다. 우리가 뉴욕의 Kith를 방문하는 동안 성수동에도 Kith가 문을 열었다. 기억에 남는 멋진 곳도 물론 있었다. 두 장소 모두 자기들만의 스토리텔링이 있었고, 사람들이 다정했고, 흑인이 운영하는 곳이었다. 다루는 브랜드 이름은 'Denim Tears'였고, 샵 이름은 'African Diaspora Goods'였다. 마치 제목과 부제 같았다. 알고 보니 전 Supreme 디렉터와 함께 브랜딩 한 곳이었다.

Denim Tears를 파는 African Diaspora Goods

간만에 완전히 새로운 경험을 한 건 두 가지였는데, 관객 참여형 연극인 <Sleep No More>를 본(?) 것, 그리고 Yankees 경기장에서의 인생 첫 야구 직관이다. 이제 쉽게 하기 어려운 새로운 경험이 있었다는 것 자체가 좋았다. <Sleep No More>는 봤다고 하기는 애매한데, 큰 건물 하나를 통째로 무대로 쓰는 연극이라 거의 3시간을 계단을 뛰어 오르고 내리며 봐야했다. 정말 인상 깊었지만 나올 때는 약간의 현타가 왔다. 이렇게까지 트렌드를 따라가야 하는 현타인데, 심지어 트렌드도 아닌.. 이미 10년 동안 흥행 중인 연극이다. '이렇게까지 새로운 것을 추구해야 하나?'라는 피로감이었던 것 같다. '이런 새로운 경험이 정말 뉴욕이라 가능했던 새로운 경험인 걸까?' 스스로에게 물어보는 순간도 좀 있었지만 쉬운 답이 나오진 않았다. 물론 <Sleep No More> 같은 공연은 이제 상하이나 한국에서도 열리지만, 지난 10년 간은 여기서만 했으니 어쩌면 뉴욕에서만 가능한 경험도 있을 것이다. 게다가 여행이라 새로운 경험을 더 많이 시도한 것도 있을 것이다.

Yankees 야구장

20대 때 다녀온 뉴욕과 30대가 되어 다녀온 뉴욕은 꽤 달랐다. 그때는 학생이었고 지금은 서울에서 일하는 사람이 된 지 오래라서 그럴까? 아니면 서울과 서울에서의 삶이 달라져서인지도 모르겠다. 달라진 것과 달라지지 않는 것 둘 다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바뀐 것들. 전에는 돌아오기 싫어서 울면서 비행기를 탔었는데. 이번에는 아쉽긴 했지만 서울에 오니 좋았다. 내가 서울에 익숙하고 편해졌다는 사실이 생경하다. 장거리 해외 여행, 도시에서의 삶, 이민자의 자리, 서울과의 차이, 나의 위치성 등 여러 생각을 해 보게 된 여행이었다. 그때는 혼자였고, 20대 였고, 막 졸업을 앞둔 학생이었다. 묵는 곳도 먹는 곳도 모두 달라졌다. 9년의 시간이 흘렀으니 변화가 당연한데 오래간만에 각별했던 곳을 다시 여행하니 크게 느낀다. 무언가를 강렬하게 느끼는 데에 점점 무뎌지다보니 이 모든 것들이 소중하다. 시간을 내는 게 더 어렵고, 더 소중해지는 것 같다는 생각도 한다.

그리고, 그래도 여전히 한 일 년 정도 살아보고 싶다. 더 이상 ‘방문’은 안 해도 될 것 같다. 지난 번엔 겨울, 이번에는 초여름을 느꼈으니 봄과 가을도 느껴보고 싶다. 조금 미지근해지긴 했지만 여전히 더 머물고 싶은 곳이긴 하다. 수많은 사람들과 얽혀서 사는 도시의 다이내믹은 여전히 기억에 남는다. 그리고 소중한 친구들을 만나 이야기하며 걸었던 것, 음식을 먹은 무척 기억에 남는다. 어디서든 가장 중요한 일이라는 걸 다시 느꼈다.

친구와 먹은 자리가 왠지 그리워 질 것 같은 마음으로 찍어 둔 테이블
Printed Matters 건너편에서
Washington Square Park 아이들 놀이 구역에서 노는 아이들과 아이들을 돌보는 어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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